서울대병원 김동기 교수, 빈혈 치료 패러다임 변화 강조
"기존 주사제 한계 극복…철분 이용률 개선 효과 분명"
[메디칼타임즈=김승직 기자] 투석 환자의 빈혈은 단순한 컨디션 저하를 넘어 심혈관계 합병증과 사망 위험을 높이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이에 오랫동안 빈혈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던 적혈구 생성 자극제(ESA)가 생존율과 삶의 질을 끌어올렸지만, 철분 이용 장애라는 한계가 여전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저산소 유도 인자 프롤릴 수산화효소 억제제(HIF-PHI)가 등장, 빈혈 치료 패러다임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에 메디칼타임즈는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김동기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투석 환자 빈혈 관리의 중요성과 새로운 경구용 치료제 HIF-PHI의 임상적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생존과 직결된 투석 환자 빈혈…기존 주사제 한계 뚜렷
김동기 교수는 빈혈은 투석 환자에게서 가장 흔한 합병증이자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신기능 소실로 인한 조혈호르몬(EPO) 생성 감소, 만성 염증, 영양 결핍 등이 겹치며 거의 모든 투석 환자에서 빈혈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투석 환자의 주된 사망 원인이 심혈관계 질환인 만큼, 빈혈 관리가 곧 심혈관계 합병증 예방의 핵심이라는 것.
이와 관련 김 교수는 "빈혈이 있으면 심장 부담이 커져 좌심실 비대를 포함한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이 커지며, 이는 입원 및 사망과도 직결된다"며 "빈혈 치료는 단지 환자의 컨디션을 좋게 해 주는 보조 치료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필수 치료"라고 말했다.
이어 "ESA는 골수를 자극해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과정에서 저장철을 고갈시키고 철분 이용률을 떨어뜨린다"며 "특히 당뇨, 감염 등 염증 상태에선 헵시딘이 증가해 철 이용률이 감소하는데, 이런 환자는 ESA 용량을 높여도 헤모글로빈 수치가 개선되기 어렵고 합병증 위험만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리적 EPO 생성·철분 이용률 개선…경구제 편의성 장점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기전의 HIF-PHI는 기존 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꼽힌다. 고지대에 올라간 것과 유사한 생리적 반응을 약물로 재현해 체내 자체적인 EPO 생성을 유도하는 원리다.
김 교수 역시 HIF-PHI의 임상적 차별점으로 생리적 범위 내 내인성 EPO 증가, 철분 이용률 개선, 경구제의 편의성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외부 주입이 아닌 환자 본인의 EPO 생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헤모글로빈의 급격한 변동이 적다"며 "특히 HIF가 활성화되면 철분 대사 장애를 일으키는 헵시딘 증가를 감소시켜 철분 이용률을 높인다. 이것이 ESA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1일 1회 복용하는 경구제로 투여 편의성은 물론 보관 및 스케줄 관리 측면에서도 큰 장점을 제공한다"며 "HIF-PHI의 등장으로 ESA 증량 외의 선택지가 생겼고 환자의 선호도와 생활을 반영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신규 투석 및 ESA 저반응 환자에 최적…현장 만족도 높아
실제 임상 현장에서도 HIF-PHI가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ESA 치료를 받던 환자가 HIF-PHI로 전환했을 때 급격한 변동 없이 목표 범위 내에서 헤모글로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거나 완만하게 상승하는 양상이 관찰된 것.
이와 함께 투석실 업무 부담이 줄어들고 환자들의 거부감도 크게 낮아져 의료진과 환자 모두 편의성 측면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신규 투석 환자와 기능적 철 결핍을 겪는 ESA 저반응 환자, 주사제를 꺼리는 복막투석 환자에게 우선적으로 HIF-PHI 투여를 고려할 정도로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신규 투석 환자는 잔여 신기능이 남아있고 염증 수치도 낮아 내인성으로 EPO를 생성하는 HIF-PHI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며 "저장철은 충분하나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염증 동반 환자에게도 HIF-PHI가 적합한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주사 스케줄과 용량 조절 사이클을 맞추던 작업이 하루 한 번 복용으로 정리돼 치료의 리듬이 단순해졌다"며 "진료의 초점이 용량 조절에서 환자의 안정적인 목표 범위 유지로 옮겨졌고, 환자들 역시 주사를 맞지 않아 좋다는 반응이 가장 많다"고 전했다.
■좁은 급여 기준 아쉬워 "환자 맞춤형 정밀 치료 시대 기대"
다만 이 같은 선택지가 진료 현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국민건강보험 급여 기준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신약의 급여권 진입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엄격한 기준이 처방의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향후 제도적으로 개선돼야 할 과제로 ESA와의 병용 금지 규정 완화, 헤모글로빈 유지 인정 범위 확대, 비투석 환자로의 적응증 확대 등을 꼽았다. 특정 약제의 우위가 아닌 기전을 토대로 처방이 이뤄진다면, 빈혈 치료 패러다임이 개별 환자 특성에 맞춘 정밀 치료로 거듭날 수 있다는 기대다.
그는 "전환 시점에 ESA와 병용이 인정되지 않아 아쉽고, 유지 투여 시 급여가 인정되는 헤모글로빈 범위가 좁아 국제 가이드라인과 비교해 조정의 여지가 있다"며 "일본처럼 비투석 만성 신질환 환자에게도 허가돼 임상적 근거 축적을 통해 적용 대상군이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의 처방 기준은 특정 약제의 우위가 아니라, 환자에게 지금 어떤 기전이 가장 잘 맞는가가 될 것"이라며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료가 더욱 정교해진다는 점에서 이 변화를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본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