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본인부담 3~4배 증가…바우처 카드 발급 번거로움도 문제
참여율 저조 환자들…"본인부담금 조정 및 발급 절차 간소화 시급"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가 본사업 전환됐지만, 늘어난 본인부담금에 바우처 카드 발급이 번거로워 환자 참여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개원가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 개원가에서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본사업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높아진 본인부담금을 건강생활실천지원금으로 상쇄하는 식이었지만, 이를 받기 위한 바우처 카드 발급이 번거로워 환자들이 참여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30일 시행된 이 사업은 1년 주기로 고혈압·당뇨병 등의 질병에 대한 맞춤형 관리계획 및 교육·상담, 생활 습관 개선 등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또 걷기 등 건강생활을 실천하거나 의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경우 연간 최대 8만 원 상당의 건강생활실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부담금이 진료비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상황에서, '만성질환 관리 교육상담' 비용이 합산돼 청구되면서 오히려 환자 부담이 커졌다는 게 개원가 지적이다.
의원 외래 본인부담률은 30%이지만 65세 이상 노인은 진료비에 따라 경감된다. 구체적으로 진료비는 ▲1만5000원 이하 1500원 정액 ▲1만5000원~2만 원 이하 10% ▲2만 원~2만5000원 이하 20% ▲2만5000원 이상은 30%의 본인부담금이 청구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성질환 관리 교육상담'에 1만5000원 수준의 수가가 청구돼, 진찰이나 간단한 혈액검사만 함께 받아도 총 진료비가 2만5000원을 넘게 된다.
이 때문에 65세 이상 환자여도 만성질환관리 본사업에 참여하려면 30%의 진찰료 본인부담금과 20%의 교육상담 본인부담금으로 5500원 이상의 비용을 내야 하게 된 것. 반면 이들 환자가 기존에 냈던 비용은 1500~1900원에 불과해 그 부담이 3~4배 커졌다는 게 개원가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 가정의학과 원장은 "65세 미만 환자는 오른 본인부담금이 천 원 정도여서 큰 체감을 못하는 반면, 정작 중요한 65세 이상 환자들이 교육을 거부한다"며 "원래 1500원만 지불하다 갑자기 5000원을 지불하려니 안 하고 말겠다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애초에 교육 자체도 공부하기 싫은 사람에게 보충수업을 해주겠다는 느낌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어서 환자 참여율이 높지 않다"며 "그렇다면 환자들에게 혜택을 줘서라도 교육받게 해야 하지만, 오히려 이를 줄여버리니 운영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사업 시행 이전엔 이 같은 본인부담금 상승분을 건강생활실천지원금으로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수령하기 위한 바우처 카드 발급에 어려움이 있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바우처 카드를 발급하기 위해선 새마을금고 계좌를 개설한 뒤 한국조폐공사 앱을 통해 이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새마을금고 계좌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환자 입장에선 영업점을 따로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것.
또 8만 원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선 ▲참여 신청 ▲케어 플랜 ▲주1~2회 혈압·혈당 자가측정 ▲연간 1~5회 교육·상담 ▲ 연간 2회 이상 점검·평가 등을 모두 수행해야 한다. 사용 시 포인트 전환도 환자가 직접 해야 해, 인터넷 접근이 어려운 고령층 환자들의 접근성이 더욱 떨어지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 만성질환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는 서울시내과의사회 곽경근 회장은, 실제로 환자 본인부담금과 바우처 카드 관련 문제에 대한 회원 민원이 많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곽경근 회장은 "본사업이 초기여서 개선돼야 할 점이 몇 가지 나와 정리하는 중이다"라며 "우선 지원금을 수령하기가 너무 어렵게 돼 있어 만성질환관리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늘어나는 문제가 가장 걱정된다"고 전했다.
이어 "바우처 카드 발급의 경우, 금융기관 역시 시스템 구축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해결돼야 하는 문제"라며 "정부 역시 카드 발급을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대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어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2022년 국민영양조사 통계집에 따르면, 우리나라 당뇨병 조절률이 25%에 그치는 등 일차의료를 통한 만성질환관리 부실 문제가 계속 지적돼왔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2025년부터 초고령사회를 앞둔 만큼,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만성질환 관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만성질환관리 본사업에서 본인부담금 조정 및 저소득층·취약계층 고령층을 위한 예외 규정 등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건강생활실천지원금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금융기관 계좌와 카드 사용을 허용하거나, 대리 발급 등 그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봤다.
이와 관련 가정의학과의사회 유승호 공보이사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만성기 환자를 중심으로 의료 시스템이 일대 전환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라며 "시범사업 기간 만성질환관리 성과가 꽤 괜찮았지만, 본사업이 시행되면서 당근을 빼버리고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만성질환관리는 대학병원에선 할 수 없는, 일차 의료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이는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될 것"이라며 "간호등급제처럼 케어코디네이터 고용에 따른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면 다학제적 접근을 위한 토대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