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중 성추행 고소, 억울한 의사들을 위한 생존 가이드"
종종 의료인들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상담을 받곤 한다. 놀랍게도 이러한 사건의 상당수는 붐비는 지하철이나 술자리 같은 공공장소가 아니라, 병원 내부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일이 흔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병원에서 발생하는 성추행 사건들
피부과 봉직의 A씨는 인모드 시술 전, 환자로부터 평소 시술 시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불만을 들으며 약간의 실랑이를 겪었다. 불편한 감정이 남은 상태에서 시술이 진행되었지만, 시술은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환자는 결제 후 별다른 말없이 귀가했다. 이후로 환자에게서 민원이나 문제 제기가 없었기에 사건은 일단락된 듯 보였다. 그러나 3개월 뒤, A씨는 인모드 시술 중 손목으로 환자의 가슴을 눌렀다는 혐의로 강제추행죄 고소를 당했다.
우리 변호인들은,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우선 시술실의 구조와 CCTV 설치 여부를 확인했다. 시술실에는 상시 녹화되는 카메라는 없었지만, 구조상 양쪽 문이 열려 있어 직원들이 지나가며 시술실을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몰래 추행을 저지를 만한 장소로 보이지 않았다. 또한, 인모드 시술 장면을 재연한 결과, 의사가 환자의 머리맡에 앉아 있어 직접적으로 가슴을 터치하기 힘든 자세였고, 핸드피스나 전선이 몸을 스칠 가능성은 있지만 의도적 접촉은 어려웠다.
첫 피의자 조사에서는 이 상황을 구두로 상세히 설명했고, 이후 시술실 사진, 시술 장면 재연 자료, 직원들의 진술서를 제출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비록 A씨가 강제추행으로 처벌될 가능성은 낮아 보였으나,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증거로 채택될 경우 기소될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 강제추행죄는 2013년 친고죄에서 비친고죄로 변경되었기에 피해자 합의해도 처벌될 수 있으며, 형법상 10년 이하 징역형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형의 법정형이 규정되어 있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결국 A씨의 무죄 소명이 받아들여져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고 사건은 무사히 종결되었다. 하지만 대응 과정에서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단지 시술 시간이 짧아 불쾌감을 느꼈다는 이유로 고소가 이루어졌지만, 만약 상황이 잘못 흘러갔다면 A씨가 감당해야 할 결과는 매우 막중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겪는 의료인은 A씨뿐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추나치료가 불쾌했다며 한의사를 고소한 사례가 있었고, 과거에는 유방암 진단이나 보형물 삽입을 위한 진단 과정에서 가슴을 촉진한 행위가 추행으로 고소당한 사건도 있었다.
다행히 의료인들의 진실한 소명이 받아들여져 대부분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혹시라도 불리한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항상 따라다녔다.
그렇다면 의료인들은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비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예방을 위한 조치
우선, 예방을 위해 의료진은 진료나 시술 과정에서 환자와의 소통을 철저히 해야 한다. 시술이나 진단 과정에서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와 과정을 환자에게 명확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평상시에 동의서 양식을 잘 구비하여, 동의를 받았다는 증거까지 확보해 두어야 한다.
진료 공간은 가능한 한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시술실 문을 열어두거나 내부가 보이는 구조를 채택해 오해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환자의 동의를 받아 CCTV를 설치하고 녹화 자료를 보관하면, 필요 시 중요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
진료 기록도 매우 중요하다. 의료진은 시술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내용을 상세히 기록하고, 환자의 반응과 동의 여부도 명확히 남겨야 한다. 특히, 동의서 작성은 환자의 이해를 확인하고 법적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진료와 관련된 모든 기록은 분쟁 발생 시 의료진의 입장을 뒷받침할 중요한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법적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병원은 내부적으로 환자와의 신체 접촉이 필요한 시술 과정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고, 이를 의료진에게 교육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시술에 있어서는 환자와 동성의 간호인력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아울러, 환자가 불편하거나 궁금한 점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진료 이후에도 소통 창구를 열어 환자의 불만을 미리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환자가 불편을 느끼기 전에 이를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면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분쟁이 발생했을 때 대응 방법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먼저, 사건의 사실 관계를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진료실 구조나 시술 과정을 재현해 해당 혐의가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부터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진료실 구조 사진, 시술 장면 재현 자료, 목격자의 진술서 등 가능한 모든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자료는 수사기관에서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로 작용할 것이다.
수사 기관 조사 시에는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유지하며, 감정적 반응을 자제하고 사실에 근거한 차분한 태도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환자가 고소에 이르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병원에서의 사소한 다툼이나 환자의 성향 등을 적절히 언급해 수사관의 공감을 얻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과거에 담당했던 사건에서, 의뢰인이 성추행범으로 몰린 상황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뭐가 아쉬워서 저런 여자를 건드냐.” 고 진술했던 일이 있었는데, 이 한마디는 수사관과 검사에게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고, 사건의 결과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순간의 감정이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음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맺음말
세상 만사가 언제나 정의롭고 공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나 역시 사법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다. 결국, 의료인이 성추행 혐의와 같은 민감한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예방과 투명한 소통, 체계적 대응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