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만 확인했던 추계위 신뢰가 숙제

발행날짜: 2025-02-17 05:00:00
  • 의료경제팀 김승직 기자

14일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국회 공청회는 환자·의료계·정부가 서로에게 가진 불신의 깊이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환자단체와 보건행정전문가는 "의사는 의과대학 정원에 이해관계가 있어 객관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의료계는 "정부가 위원회 결정을 수용할지 믿을 수 없어 의사가 과반의 위원을 차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불신을 특히 잘 드러냈던 것은 "의료공급자는 로비 받을 수 있고, 부탁받을 수 있다"는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원 정형선 교수의 발언이었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등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여러 의사 조직은, 의사 공동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 이런 의사들이 대한의사협회 추천 위원으로 수급추계위에서 과반을 차지한다면,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의협은 이 같은 정 교수의 발언이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하며, 이에 대한 사과와 함께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등 그의 공적 위원회 위원직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논리와 말이 무의미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이날 공청회에선, 양측의 주장이 조금도 좁혀지지 못한 채 쳇바퀴를 돌았다. 서로를 믿을 수 없으니, 양측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성 있는지는 상관없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런 사회적 불신이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의정 갈등으로 이미 수조 원의 재정 손실을 겪었고, 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사후 해결에 치중된 우리나라의 갈등 해결방식을 지적한다. 실제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서문기 교수의 '한국사회의 갈등구조와 계층갈등' 연구를 보면 우리나라는 행정집행 및 법원판결, 입법과정에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회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효율성에 기초한 정책 집행을 강행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렇게 입법 및 법원판결 등 제도적 근거만 활용해 정책을 추진하기보단, 갈등 당사자의 의견을 선제적으로 수렴·반영해야 한다는 것.

특히 이 연구는 "일단 발생한 사회갈등은 장기간에 걸친 대립적인 양상으로 진행되고, 새로운 갈등과 중첩되며 복합적인 문제를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사태가 장기화하며 감당해야 할 고통과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우리는 의정 갈등으로 겪었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것처럼, 이제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때다. 정책을 입안해 집행하기 전, 설계 단계부터 갈등 당사자와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수급추계위는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을 발표하기 전부터 의료계가 요구하던 사안이다. 이 위원회가 의정 갈등이 1년 지난 시점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 올바른 정책 추진 방식이었는지 의문이다.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이유는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협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수급추계위가 당사자들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불신의 고리를 끊는 방안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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