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칼럼]고상백 교수의 의학과 미술

기억과 망각은 항상 우리 삶을 동반한다. 기억과 망각은 삶의 근본 현상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기억하고, 망각할 수 있기에 살아간다. 우리 삶에 기억이 필요한 것처럼 망각 역시 삶에 필수적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그리고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기억과 망각의 관계를 결정한다.
장샤오강과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은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을 탐구하는 예술적 시도로 공통점이 있다. 장샤오강의 망각과 기억 시리즈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집단적 기억과 개인의 정체성을 조명하며, 카미유 클로델의 사쿤탈라는 개인적 기억과 감정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강렬한 서사를 담고 있다. 두 작가는 서로 다른 시대와 매체를 통해 기억과 망각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색한다.
장샤오강의 망각과 기억 시리즈는 마치 빛바랜 가족사진처럼 차분하고 무표정한 인물들을 그려내며, 개인의 기억이 집단적 역사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말해 개인의 정체성이 지워진 가족의 모습을 통해 집단적 결속을 중시하는 중국 사회의 가치관을 드러내며, 기억과 망각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동시에 망각하는 존재로,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한편, 클로델의 사꾼탈라는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는 재회의 순간을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도의 대서사 마하바라타와 칼리다사의 희곡 등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사꾼탈라는 인도의 전설적인 여인으로, 연인 두샨타 왕이 사쿤탈라와의 사랑을 잊어버렸다가 나중에 기억을 되찾아 재회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클로델의 샤꾼탈라 작품은 인간의 기억과 망각, 고통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본능적 욕구를 신화적 기원과 연결하여 보여주고 있다.
클로델 자신도 삶에서 망각의 대상이 되었던 만큼, 그녀의 작품은 기억을 붙잡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생전에는 로댕의 그림자에 가려져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정신병원에서 긴 세월을 보내며 세상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그러나 오늘날 그녀는 위대한 조각가로 다시 기억되고 있으며, 그녀의 작품은 망각 속에서도 예술이 남긴 흔적이 어떻게 시간을 초월해 새로운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기억과 망각이라는 주제는 단순히 예술적 탐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망각, 즉 인지 장애와 치매에 대한 현대인의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억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잃어버리는 것은 곧 자신을 잃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망각은 단순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의학적으로 볼 때, 기억을 잊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정보가 지속적으로 축적된다면 인간의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일부의 기억을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중요한 것들을 선별할 수 있다. 따라서 망각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고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치매와 망각은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치매는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인해 뇌 기능이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병리적 과정이며, 단순한 망각과는 차이를 갖는다. 건강한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기억을 잃을 수 있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며, 과거의 특정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개인의 가치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장샤오강의 작품 속 인물들이 흐릿한 배경 속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며, 새로운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의 일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서 인간의 가치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클로델의 사꾼탈라가 보여주듯, 기억은 되살아날 수도 있으며, 남겨진 사람들에 의해 지속될 수도 있다. 장샤오강의 작품 또한 망각 속에서도 어떤 기억은 여전히 존재하고, 개인과 사회가 이를 통해 자신을 재정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기억과 망각은 반대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요소이며, 망각이 있기에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예술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장샤오강과 클로델의 작품은 단순한 예술적 형상이 아니라, 망각과 기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의 깊은 본능을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