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정민재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당신은 이성을 따르겠는가, 감정을 따르겠는가? 대부분이 '이성'이라 답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요한 결정일수록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감정이 개입하는 순간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나아가,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고 믿었다.
이를테면 MBTI 검사에서 '감정적 측면을 다소 무시하더라도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중시한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지켜주는 것보다 중요하다' 따위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약간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렇다'를 선택했다.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늘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것이 멋있고 성숙한 사람이라 믿었던 것 같다.
한번은 친구가 나의 어떤 말에 서운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말실수를 한 것도 아니었고, 누구나 할 만한 말이었다. 친구는 스스로도 "네 의도가 그렇지 않다는건 나도 아는데, 오늘 내가 기분이 안좋아서 그 말이 너무 서운하게 들렸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아는 사람이 왜 내게 사과를 바라는 걸까.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친구는 "그래도 서운했다니까 그냥 미안하다고 해"하고 가볍게 말했지만,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욱 그릇된 일 같았다. 나는 그런 단단함이 곧 성숙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단단함이 아니라 미숙한 고집이었음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 회장을 맡았던 때였다. 나는 동아리를 위해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썼고,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러나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원들이 몇몇 있었다. 일을 미루거나 성의 없는 결과물을 내어 와 결국 다른 사람들이 두 배로 수습해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의 감정이나 동기를 살피기보다는 그들의 잘못을 짚으며 다그치곤 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나는 공동체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과는 조금씩 나아졌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나 동아리 활동이 마무리될 무렵,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A는 나를 보자 재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함께 동아리 임원진을 맡았지만 열심히 참여하지 않아 유독 내가 자주 다그치던 친구였다. 처음에는 같이 임원을 맡아 나름 친하게 지냈던, 친하진 않더라도 만나면 인사는 할 사이였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그는 나를 마주치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듯했다.
1학년 때까지는 살갑게 지내던 부원 B의 말투가 차가워졌음을 느꼈을 때는 허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난 우리 모두를 위해 애쓴 것뿐인데. 그러나 결국 제일 중요한 '사람'을 잃고 있었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도 애써왔던 걸까. 그때는 억울함이 앞섰지만, 이제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알 것도 같다. 내 죄목은 '기분상해죄'였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한 행위도 죄가 된다는 농담 섞인 표현이지만, 내가 간과했던 관계의 핵심이 담긴 말이다. 결국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라는 것. 나 역시 그렇고, 모두가 그렇다. 우리는 이성으로 결정을 내린다고 믿지만, 마지막 순간 등을 미는 것은 대부분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의 방향이다.
그렇기에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먼저 돌아봐야 하는 것은 상대의 감정일지 모른다. 이제는 '사과 해야할 상황인지'를 판단하려 하기보다는, 나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이 상했다면 그 감정 자체에 대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꼭 남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결국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대부분의 성공은 타인의 인정 위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을 살피는 일은 배려이면서 동시에 삶의 전략이기도 하다.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는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는 일을 단순한 공감의 차원이 아니라, 타인의 선의를 얻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로서 다룬다.
"만일 논쟁하고, 괴롭히고, 반박한다면 이따금 승리를 맛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승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선의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감정을 살피는 것이 남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곧 상대방의 선의를 얻어 나에게도 좋은 결과를 도모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는 흔히 남의 말을 무시하고 독설을 일삼아도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결국 실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는 캐릭터가 멋있게 그려지고, 결국 모두가 그에게 박수 쳐주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제아무리 실력으로 증명해 보인다 한들 타인의 마음을 얻지 못한 이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줄 사람은 없다.
결국 이 세상은 사람들이 감정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곳이기에, 우리는 이성이 강조되는 시대일수록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 우리의 '감정'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