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문호 칼럼위원(정형외과)및 KMA폴리쉬 특별위원

의료의 본질은 치료에 있지 않다. 진정한 의료는 '언제 치료를 멈추고 환자를 보내야 하는가'를 아는 데서 완성된다. 환자를 끝까지 붙잡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더 이상 자신의 영역이 아닐 때 정확히 넘기는 것이 의료의 수준이다.
현대 의학은 이 판단을 개인의 감각에 맡기지 않는다. 진료의뢰서, 협진, 상급병원 전원이라는 구조를 통해 환자를 이동시키며,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 신호가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다음 단계의 의료로 연결된다. 이 과정은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의과 의료는 결국 '환자를 보내는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그러나 현재의 한방 의료는 이러한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전원은 제도화된 시스템이 아니라 개별 의료인의 판단에 맡겨져 있으며, 언제 다른 의료기관으로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차이는 단순한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환자의 생존을 좌우하는 구조적 격차다. 의료의 또 다른 본질은 '검증된 경험'이다.
의과 의료에서 의사는 면허 취득 이후 곧바로 독립 진료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부분 전공의 과정을 통해 수년간 환자를 경험하며 진단과 치료의 기준을 체화한다. 이 과정은 의료 오류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이며, 의료를 개인의 기술이 아닌 표준화된 시스템으로 만드는 핵심 장치다.
그러나 한방 의료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보편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련 과정이 존재하더라도 필수 경로가 아니며, 상당수는 졸업과 동시에 독립 진료에 진입한다. 이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임상 판단이 환자에게 직접 적용될 수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구조적으로 전원 시스템의 부재와 수련 구조의 미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전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검증되지 않은 판단이 반복될 경우, 진단 지연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 지연은 환자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최근 한 환자가 장기간 치료를 받는 동안 암 진단이 지연되어 말기 상태에 이른 사건은 이 구조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원은 일부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인과관계 입증의 한계를 이유로 대부분의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환자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시스템은 아무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이다.
환자는 시스템이 아니라 판단에 맡겨져 있고 판단이 실패하더라도 책임은 제한되며 그 구조는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은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경상환자 치료를 제한하기 위한 '8주 룰'조차 수년간의 논의와 데이터 검토를 거쳤음에도 특정 집단의 반대에 의해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이는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 구조가 지속되면 결과는 분명하다. 저위험·고수익 진료는 확대되고, 고위험·필수의료는 붕괴된다. 의료는 치료가 아니라 리스크 회피의 산업으로 변질된다.
이제 국회는 선택해야 한다. 전원 없는 의료를 그대로 둘 것인가, 수련 없는 진료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환자 안전을 중심으로 의료 구조를 재설계할 것인가.
해답은 명확하다.지속되거나 악화되는 증상에 대해서는 검사 및 전원을 의무화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 또한 의료인의 독립 진료 이전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임상 수련을 의무화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자동차보험 등 보험 영역에서는 장기 치료에 대해 자동 심사와 전원 연계를 제도화하여 의료 이용의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 결정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며, 특정 이해관계에 의해 쉽게 뒤집히는 구조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의료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구조가 없는 의료는 환자를 보호할 수 없다. 지금 대한민국 의료는 묻고 있다. 환자를 시스템으로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판단에 맡긴 채 방치할 것인가.
그 선택의 책임은 국회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