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태그로 보는 뉴스

언어 (Language)

자유에 대해

연세의대 본과 4학년 박태웅
  • 가
발행날짜: 2026-11-02 05:00:00
  • 연세대학교 의대 본과 4학년 박태웅

아직도 훈련소를 잊지 못한다.

수천 명의 어린 남자들이 군인이 되기 위해 함께한 공간.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았든, 얼마나 잘나고 못났든, 모두가 xx 번 훈련병이라는 대등-그 누구보다 열등한-한 지위가 됐던 공간. 그곳은 너무나 이질적이라서, 침대에 몸을 누이며 커다란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닐지 공상에 잠기곤 했다.

군장을 메고 행군할 때마다 위를 올려봤다. 봄 하늘은 맑고 청아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태어나길 요구받는 이곳에서, 집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건 하늘이 전부였다. 해는 늘 정해진 시간에 뜨고 지고, 구름은 잔잔히 흘러갔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만큼은 바깥세상과 아직 닿아있다고 느꼈다.

수류탄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3주 넘게 이어진 기침, 매일 소금기가 잔뜩 올라오게 젖는 군복, 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앞뒤로는 앳된 얼굴의 동기들이 자기 몸만 한 군장을 둘러맨 채 당장이라도 깔릴 것만 같은 자세로 위태롭게 걸었다. 고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발을 옮겼다.

그날도 계속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을 계속 올려다봤다. 작은 물줄기가 졸졸 흐르는 흙길을 지날 때쯤, 아주 작은 새 한 마리가 그 파아란 하늘 한가운데를 뚫고 날아갔다. 아름다웠다. 저 새처럼 날아서, 눈앞의 벽을 넘을 수 있다면. 철조망을 넘어 가족과 친구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를 갈망한다는 문장을 피부로 받아들였다. 평생 수십 번은 읽고 지나친 그 문장을…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갔다. 1년 반의 긴 꿈에서 깨어나 일상을 되찾았다. 더 이상 허구한 날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할 필요도, 매 순간 통제당할 이유도 없는 평범함이 내게 찾아왔다. 그렇게 믿었다.

눈을 뜨면 오후 한 시를 넘길 때가 많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게임을 하고, 출출하다 싶으면 간단한 요리를 해 먹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2배속으로 돌리다 잠드는, 지극히 권태로운 일상이 반복됐다. 가볍게 산책을 나가기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새로운 환경은 지나치게 빨리 익숙해졌다. 해방감도 잠시, 컴퓨터 전원을 끌 때마다 허한 마음이 쌓였다. 방 불을 끌 때마다 즐거움이 잦아들었다.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찾는 사람도 없었다. 비가 세차게 오던 어느 주말은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컴퓨터와 침대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치 철조망과 학교 사이의 논밭 어딘가에 덩그러니 떨어진 듯했다.

창밖의 하늘은 행군 때와 똑같았다. 그때 하늘은 벽 너머의 현실을 이곳의 현실과 이어주는 끈이었지만, 이제는 이어줄 대상이 없었다. 틈만 나면 전역일을 세며 괴로워하던 버릇은 복학까지 남은 날짜를 세는 것으로 되풀이됐다.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며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손에 쥐었는데, 왜 조금도 만족하지 못할까.

자대에서는 의무병이었다.

의무실은 조용했다. 환자라고 해봤자 작업하다 다치거나 감기 유행에 휩쓸린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일과의 절반 이상은 기다리는 일이었다. 책을 읽고, 할 일을 하고, 동료들과 잡담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소독약 냄새, 대충 정리된 약장, 어질러진 침대. 의학의 소품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의학과 관계없는 시간을 보냈다.

늘 비슷한 약을 줬다. 목감기든 코감기든 몸살이든 똑같았다. 의무병끼리는 국밥 세트라고 불렀다. 좀 아파 보이면 특-타이레놀 한 알 추가-으로, 아니면 보통. 늘 같은 약을 봉투에 담았다. 다르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그걸 요구하지 않았다.

2주쯤 지난 후 낫지 않는다며 다시 찾아오는 병사들이 있었다. 의무실은 다시 진통제를 쥐여줬고, 그들은 결국 시간의 힘으로 나았다. 낫지 않으면 민간에 보내면 그만이었다. 의무실은 제 역할을 다했다. 약은 나갔고, 기록은 남았고, 다들 결국은 나았다.

군의관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병사에게 증상을 물어보고 약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드물게 좋은 의사였다. 하지만 그조차도 주어진 의무에만 충실할 뿐, 복통과 감기, 알러지를 제외한 질환(전부라 해도 무방하다)에 대해서는 "내 전공은 그쪽이 아니니 민간으로 가시오"로 일관했다.

나는 그 옆에서 그저 낮잠을 청하고, 진통제가 만병통치약인 양 환자의 손에 쥐여주며 일과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신경 쓰지 않는 게 가장 합리적인 구조 안에서, 아주 성실하게 그 구조에 따랐다. 그렇게 의료인 흉내만 내며 군 생활을 했다. 혈압계를 감고, 체온을 재고, 이름과 증상을 받아 적었다.

병장이 되고, 같은 증상으로 세 번째 찾아온 병사가 있었다. 그의 아픔을 물어보기보단, 일과를 빼고 싶어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열도 없고 안색도 괜찮은 걸 보니 뻔하구먼. 그는 또 같은 봉투를 받아 들고 나갔고, 나는 읽던 책을 마저 펼쳤다. 그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는 나았을까. 와 봐야 또 국밥이라는 걸 알아버렸을까. 민간 병원엔 갔을까, 그냥 참고 버텼을까. 여러 질문을 던져봐도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상대를 알고 싶은 마음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걸 인지한 순간 내게 질려버렸다. 흉내가 버거워졌다.

훈련소에서 갈망한 건 벽을 넘는 자유였다. 돌이켜보면 그건 자대에서 이미 반쯤 주어졌고, 전역하고는 전부 주어졌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원한 건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권리와 책임의 자유였다. 아픈 사람 앞에서 그의 삶을 궁금해하고, 판단과 함께 그 결과를 끝까지 떠안는 자유.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을 기어이 해내는 자유.

사실 그 자유는 이미 의무실에 있었다. 시간은 남아돌았고, 세 번이나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내려놓고 구조 뒤에 숨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아무도 요구하지 않아서라는 핑계 속에 무관심을 골랐다. 그렇다면 병원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 갈망이 깔끔하게 채워질까?

병원엔 환자가 넘쳐난다. 나를 부를 사람도 넘쳐난다. 하지만 타인을 궁금해할 시간은 압도적으로 적다. 실습 때 참관한 외래에서 교수님은 오전에만 90명을 봤다. 회진은 EMR 화면을 간신히 훑고 병상을 쭉 돌아보는 게 최선이었다. 환자가 무언가 물으려 하면, 레지던트에 하라는 말을 남기고 바쁜 걸음을 옮겼다.

의무실의 구조는 핑계였지만 병원의 구조는 진짜다. 그래서 더 좋은 핑계가 된다. 쏟아지는 환자 앞에서는 그 누구도 나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나조차도.

너, 거기 가서도 국밥 말 거잖아. 목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막지 않던 자리에서조차 1년 반 동안 지기만 했던 내가, 단순히 권리와 책임을 원한다며 학교로 돌아간다고 변할 리 없다. 이대로라면 나는 국밥을 말던 의무병에서 주어진 일에만 충실한 의사가 될 테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이번엔 그가 떠나기 전에 묻는 것. 요즘 잠은 좀 주무시냐고. 문진표에도 있는 질문이지만, 이번엔 대답이 끝날 때까지 봉투를 내밀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병사는 떠나고 나서야 나를 깨웠다. 그 순서만큼은 바꿔야 한다.

책장에서 몇 년 묵은 해리슨을 꺼냈다. 먼지를 털고 첫 장을 펼쳤다. 새벽 세 시였다.

관련기사

오피니언 기사

댓글

댓글운영규칙
댓글을 입력해 주세요.
더보기
약관을 동의해주세요.
닫기
댓글운영규칙
댓글은 로그인 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으며 전체 아이디가 노출되지 않습니다.
ex) medi****** 아이디 앞 네자리 표기 이외 * 처리
댓글 삭제기준 다음의 경우 사전 통보없이 삭제하고 아이디 이용정지 또는 영구 가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1. 저작권・인격권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2. 상용프로그램의 등록과 게재, 배포를 안내하는 게시물
3. 타인 또는 제3자의 저작권 및 기타 권리를 침해한 내용을 담은 게시물
4. 욕설 및 비방, 음란성 댓글